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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 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고 종신교수로_20130530동아카테고리 없음 2013. 5. 30. 09:28
“수학의 王道? 생각하는 바보가 되세요”
“간혹 머리가 좋다고 자만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머리 좋은 것은 금방 한계에 이르고 말아요. 겸손한 마음을 갖고 학원에서 문제 푸는 기술만 배우기보다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고등과학원은 방문교수로 와 있는 오희 미국 브라운대 교수(44·사진)를 미국 예일대가 7월 1일자로 수학과 종신교수로 임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예일대가 수학과 종신교수로 여성을 임용하는 것은 1701년 대학 설립 이후 312년 만에 처음이다. 또 미국의 상위권 대학에서 여성이 수학과 종신교수가 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 오 교수는 1997년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수학으로 유명한 미국 프린스턴대와 브라운대 교수로 임용됐다.
‘수학 천재’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은 경력의 오 교수는 이날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내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로 낮춰 생각하는 ‘훈련’을 했다고 덧붙였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책 ‘학문의 즐거움’을 읽은 뒤 이런 자세를 갖게 됐다고 했다.
“제가 바보라는 걸 인정하니까 겸손해지더군요. 어떤 수학문제든지 더 열심히 매달리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버릇도 갖게 됐습니다.”
전남 나주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경희대 대학원에 다니던 큰오빠의 조언을 듣고 수학과에 지원했다. 큰오빠가 ‘수학을 공부하는 것도 괜찮다’는 한 은사의 말을 전하며 수학과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그 은사는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였다.
87학번인 오 교수도 대학 시절 학생운동의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총학생회 노동분과장을 맡아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던 그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수학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회과학에는 최선과 차선이 있을 뿐 정답이 없다는 점에 답답해하며 정답이 있는 수학이 그리웠다는 것이다.
은사에 대한 마음의 빚도 언급했다. 운동권 시절 유급을 피하려 아무런 준비 없이 중간고사를 보러 들어갔다가 담당 교수였던 이인석 교수(서울대 수리과학부)에게 장문의 사죄 글을 답안지에 남겼다. 이 교수가 추천서를 써줘 오 교수는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앞서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의 추천서가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요즘 하버드대 서점에서 발견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명언이 담긴 책을 감명 깊게 읽고 있다. 그는 “‘핏방울 없이는 좋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을 묻자 오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 재미없지만 수학의 왕도는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며 “좋아하면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그러면 쉬워지고 결국 잘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