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성적 역전’을 꿈꾸는 부모가 많다. 중2 아들을 둔 윤미라(45·서울 양천구)씨도 그렇다. 윤씨는 “상위권 애들은 방학 때 공부에만 매달려 무섭게 진도를 뺀다”며 “이번 여름방학엔 나도 제대로 공부를 시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씨 말처럼 상위권 애들은 방학 동안 공부만 할까. 江南通新 ‘전교 1등의 책상’ 시리즈에 소개됐던 각 학교 전교 1등의 방학 계획표를 봤더니 이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년은 초 6, 중 2, 중 3으로 각기 달랐지만 모두 여행과 여가 시간이 충분히 잡혀 있었다. 전교 1등의 여름방학 계획표와 부모의 교육법을 공개한다.
서울교대부설초 6학년 이민경양
매일 3시간 문화 생활
서울교대부초 6학년 이민경(12·서울 마포구 토정동)양의 여름방학 컨셉트는 ‘즐겁게, 재밌게, 신나게’다. 이양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시간대별로 빡빡하게 채워 넣은 학습 계획표도 없다. 영어 과외와 수학, 그리고 사자성어 외우기를 제외하면 방학 계획표는 다른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영어 과외 역시 토플 같은 인증시험 공부가 아니라 영어 원서 읽기다.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책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단어를 익힌다. 수학은 바로 다음 학기인 6학년 2학기 문제집을 하루에 2~3장 푸는 게 전부다. 이외에 특별한 선행은 없다. 그런데도 시험마다 거의 만점을 받는 비결은 뭘까. 엄마 이윤재(38)씨는 “예습할 때 모르는 내용을 따로 표시해 뒀다가 학교 수업 때 더 집중해서 듣는다”고 말했다.
이양의 일일 계획표에서 가장 큰 칸은 매일 오후 1~4시 ‘스페셜 타임’이다. 엄마와 함께 공연이나 전시를 보거나 서점에 가는 시간이다. 벌써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과 ‘이슬람의 보물 알사바 왕실 컬렉션’ 전시를 봤고, 뮤지컬 ‘레미제라블’, 영화 ‘미스터 고’도 관람했다.
이양이 가장 기대하는 건 8월 5일부터 4박5일 네팔로 떠나는 해외자원봉사다. 원래 세 식구가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었지만 엄마와 민경이만 네팔로 자원봉사를 떠나게 됐다. 이양이 ‘제5회 지구촌 나눔 가족, 희망편지쓰기대회’에서 대상인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한 덕분이다.
하루 학습 목표 꼭 지켜
정승훈(14·경기 고양시)군은 방학마다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6살 때부터 1년에 2~3번씩 해외여행을 했다. 이번 여행지는 괌이다. 31일(오늘)부터 8월 6일까지 6박 7일 일정이다. 괌에서 돌아오면 개학일(8월 19일)까지 2주도 채 안 남는다. 정군은 “방학 숙제로 권장도서 읽기가 있는데 괌에서 2권을 읽을 계획”이라며 “권장도서 외에 매일 하는 학습지와 만화책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군은 평소에도 치밀하게 학습 계획표를 세우지 않는다. 방학 계획표 역시 하루 목표치를 정하는 수준이다. 정군은 “학습지, 인터넷 강의, 독서, 문제집 풀기 등 평소처럼 자기주도학습을 이어갈 생각”이라며 “오후에 친구들과 놀고 싶으면 오전에 몰아서 공부하는 식으로 그날그날 공부량과 공부 순서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느슨해 보이지만 학습량은 만만치 않다. 매일 학습지를 4~5장씩 풀고, 인터넷 강의는 과목별 2시간, 그리고 영어 단어는 최소 20개씩 외운다. 정군은 “목표를 달성하는 게 공부 시간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며 “친구랑 노는 게 좋아도 그날 목표치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못 견딘다”고 했다.
CNN·TED 동영상 보기
꼼꼼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임한창(14·서울 서초구)군은 이번 여름방학도 계획표에 맞춰 공부할 계획이다. 매일 아침마다 계획을 세운 후 반드시 지켜야 잠자리에 들 정도라서 임군은 이번 여름방학 계획표를 짜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다. 일단 계획표에 써놓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단다. 임군은 “이번 방학엔 부족한 과목 위주로 공부할 계획”이라며 “지난해 학교에서 자매결연을 맺은 호주 캠프를 다녀왔기 때문에 올해는 해외 여행은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23일 방학과 동시에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27일부터 시작하는 과학 학원 수업에 맞춰 방학 계획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8월 19일 개학까지 임군이 정한 계획에는 학기 중 부족한 독서량과 단어 외우기, 수학 공부 보강이 들어있다. 임군은 “아무래도 학원 숙제가 많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무조건 학원 수업에 이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찾아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또 이번 방학에는 아빠가 권한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미국의 비영리 재단이 정기적으로 여는 강연회, www.ted.com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동영상을 꾸준히 볼 생각이다.
TIP
1등 엄마·아빠의 노하우
정승훈 아빠 정기범씨 “문제집 채점하며 아이의 학업 수준 파악해요”
정기범(43)씨는 평소 아들이 푼 문제집을 직접 채점한다. 매일 저녁식사 후 3시간 정도가 아들과 함께 문제집을 채점하며 공부하는 시간이다. 정씨는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그저 아이와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채점해 보라”고 권했다. 틀린 문제가 있으면 왜 틀렸을까를 함께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학교생활 등 대화의 소재를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솔직히 채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의 통로라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가 푼 문제집을 직접 채점해 주면서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채점할 때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건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임한창 엄마 김성민씨 “인터넷 활용해 학습 흥미 끌어줘요”
김성민(44)씨는 이번 방학에 한창이에게 매일 다른 주제의 뉴스를 5~10분 담은 CNN student news(edition.cnn.com/studentnew)와 TED 동영상을 챙겨서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무작정 영어 단어만 외우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아이가 쉬어가며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며 “시사적인 내용뿐 아니라 마술 같은 재미있는 콘텐트도 있어 중고생이 부담 없이 보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슬쩍 임군에게 보여줬더니 임군이 관심을 갖고 스스로 계획표에 넣었다. 김씨는 “아무리 좋은 교재나 학습 프로그램이라도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강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글=김소엽·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